영국을 제국으로 만든 영국 동인도회사의 흥망성쇠

세계사를 공부하면 자주 접하게되는 동인도회사, 그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영국 동인도회사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영국을 제국으로 만든 영국 동인도회사의 흥망성쇠를 정리했습니다

기초 자료는 영국 BBC 방송 다큐멘터리 중 ‘제국의 탄생, 동인도회사’를 시청 후 여러 자료들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해당 다큐는 영국을 제국으로 만든 영국 동인도회사를 영국의 관점에서 영국 BBC방송이 제작했습니다

아래의 인도 지도 중 파란색이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세포이 항쟁 등을 일으킨 후 영국 왕실에 양도한 인도의 식민지 지배지역입니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영국을 제국으로 만든 것은 과장이 아닌 사실이었습니다

영국을 제국으로 만든 영국 동인도회사의 흥망성쇠
영국을 제국으로 만든 영국 동인도회사가 1858년 해산될때 영국 왕실에 양도한 인도 영토

마케팅을 전쟁이라고 주장한 책이 있었지만 이 당시는 전쟁을 통해 마케팅을 구사한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동인도회사란 무엇인가

유럽의 국가들이 항해술을 발전시켜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와 동남아시아, 동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해 세계를 한바퀴 도는 등 여러가지 지리상의 발견을 이룩한 대항해시대(15세기~18세기)에 만든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무역회사를 동인도회사라고 합니다

당시 동인도회사의 대표는 식민지 총독을 겸임했고 아시아 지역의 무역 독점 면허를 받았습니다

동인도회사는 소유 영역에서의 사법권, 치안권, 외국과의 강화 조약 체결권, 군인과 현지 용병을 고용하는 군사력까지 함께 가지고 식민지 수탈의 첨병 역할을 했습니다

이 다큐에 나오는 영국 동인도 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 외에 네덜란드, 포르투갈, 프랑스, 스웨덴도 비슷한 이름과 성격의 동인도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기본적으로 소속 국가의 국력에 따라 회사의 역량도 달랐습니다

최초에 가장 강력했던 곳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고 포르투갈은 가장 약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곳은 영국 동인도회사였습니다

영국을 제국으로 만든 영국 동인도회사

영국 동인도회사는 1600년 12월 31일 영국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아시아 무역의 독점권을 부여받아 설립된 칙허기업(왕실의 허가를 받아 설립한 기업)입니다

동인도회사의 최초 주주들은 영국 왕실과 당시 런던의 은행 자본가와 상인들이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BBC의 표현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이었으며 , 런던 주식시장의 중심이었고, 한때 자산규모가 영국 전체의 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이 회사는 영국을 해상강국으로 만들고 영어를 세계 언어의 중심으로 변화시켰으며 궁극적으로는 영국을 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아시아와의 무역으로 영국을 성장시켰으며 런던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주요 물품은 인도에서 만든 면직물과 향신료, 중국의 차, 도자기 등이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청나라에 아편을 수만 상자씩 팔았으며 청나라가 아편을 버리고 수입을 금지하자 아편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사실상 인도를 지배할때는 기근을 막기 위한 식량을 심기보다는 청나라에 수출할 아편을 기르게 해 천만명 내외의 인도 사람들이 굶어죽었다고 합니다(다큐에서는 200만에서 1천만명 사이라고 밝힘)

영국 동인도회사의 성장과 종말

영국 동인도회사는 1600년 12월 31일 설립하고 1600년부터 1639년까지 영국 동인도회사는 수마트라 섬, 자바 섬, 태국, 일본 등을 항해하며 무역하지만 당시의 강력한 경쟁자인 네덜랜드 동인도회사에 뒤쳐집니다

회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607년 동인도에서 처음 배가 도착하자 향신료인 정향을 팔아 투자자들이 230%의 수익률을 거뒀다고 합니다

정향은 당시 진통제로 쓰였는데 같은 무게의 금과 같은 가격이었습니다

첫 항해의 수익금은 3만6천파운드로 현재의 시세로는 수백억원(hundreds of thousands of pounds)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네덜랜드 동인도회사에 치인 영국 동인도 회사는 1639년 인도 마드라스파트남이라는 곳에서 정착지를 만들고 1년만에 방직공 300여명을 모아 면직물을 영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합니다

17세기 중반은 인도의 면직물이 싸고, 예쁘고, 내구성이 강해 유럽의 소비자들이 즐겨찾는 명품이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요새를 짓고 경비를 고용했으며 50년동안 인도의 마드라스 외에 캘커타와 뭄바이(bombay)에 정착지를 설립했습니다

이들 도시는 현재도 인도의 가장 큰 도시들입니다

1700년 마드라스파트남의 인구가 8만명이 넘었으며 무역은 계속해서 성장해 영국 생활방식을 변화시켰습니다

당시의 영국 소비자들은 인도의 설탕과 후추를 선택할 수 있게 됐고 차와 커피 등 따뜻한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인도에서 수입한 고급 섬유는 영국 섬유업계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일부에서는 영국 상인들이 인도의 섬유와 면직물을 찢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부터 영국에 파자마, 반다나(보호 또는 장식 용도로 머리나 목에 둘러 착용하는 삼각 또는 사각형 모양의 천조각), 덩가리(일종의 청바지용 천) 등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영국 섬유업자를 지키기 위해 1722년 인도 섬유 직조 금지법(캘리코 금지법)을 만들었지만 동인도회사의 로비로 사실상 무효화됐다고 합니다

약 100년동안 인도의 섬유 판매가 동인도회사 수익의 60%를 차지했으며 1700년에 인도 내 동인도회사의 무역 거점은 22곳으로 증가했습니다. 무역 거점 중 가장 큰 곳은 캘커타였다고 합니다

인도의 무굴제국(1526년~1857년)은 동인도회사가 상륙하고 약 200여년간을 통치했습니다

당시 영국 인구가 400만명이었는데 인도의 인구는 1억4천만명이었으며 인도의 경제규모는 세계 2위로 전세계 GDP의 25%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동인도회사의 정착 후 수십년간 무굴 제국은 동인도회사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동인도회사는 현지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무굴제국에 많은 세금을 냈기 때문입니다

동인도회사는 영국에서 들여온 금과 은으로 섬유제품을 구매해 영국으로 수출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영국에서 금괴와 은괴에 세금을 냈으며 부동산을 사고 공장을 지을 때도 돈을 냈습니다

하지만 1707년부터 무굴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우랑제브(6대 황제)의 사망으로 제국은 지역 세력으로 분할되고 권력이 분할되는 등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무굴 제국 지도(mughal empire)
무굴 제국 지도(mughal empire)

※ 영국 BBC방송은 무굴제국의 6대 황제인 아우랑제브 황제(1658년 ~ 1707년)를 마지막 황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무굴제국의 황제는 20대 황제인 바하두르 샤2세(재위기간 : 1837년~1857년)를 마지막 황제로 본다고 합니다

1748년 즈음부터 프랑스와 영국은 인도에서 식민지배를 둘러싼 긴장에 쌓이게 됩니다

1748년 영국에서 480명의 군인이 동인도회사의 근거지인 마드라스로 파병됩니다

파병된 영국군은 인도의 세포이(페르시아어로 군인이라는 뜻)라는 현지 인력을 용병으로 고용하게 됩니다

1756년부터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무역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인도 내 프랑스와 그 동맹국 무굴제국와 무력 충돌하게 됩니다

1756년 영국과 동인도회사의 착취에 저항하는 벵골의 지도자인 무굴인 시라지 우드 달라가 캘커타의 동인도회사를 공격해 함락시키고 146명의 포로를 잡습니다

시라지 우드 달라(BBC는 이 지도자를 폭군으로 묘사)는 이들 영국인 포로들에 대해 좁은 감옥에 가둬 23명만이 살아남게 했다고 합니다

동인도회사에 파견된 영국군은 시라지 우드 달라의 참모를 매수해 벵골과의 전투에서 대승합니다

1756년 동인도회사는 무굴제국에 27만 파운드를 납부하고 드와니라는 화폐 발행 권한과 인도의 가장 부유한 지역이면서 1천만명이 살고 있던 벵골 지방의 토지세를 징수하고 다스리는 행정권한을 무굴 제국 황제로부터 양도받습니다

(인도와의 전투에서 이기고 난 후 거래한 것을 공정한 양도라고 봐야 할지는 모르지만…영국 BBC가 제작했으니까요…)

유럽과 아메리카대륙, 아시아를 범위로 하는 사실상의 세계대전인 7년 전쟁에서 영국은 승전국이 됐으며 인도에서 프랑스 세력을 몰아냅니다

※ 7년 전쟁(Seven Years’ War, 1756년 ~ 1763년)
– 원인 :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로이센 독일 동부의 슐레지엔을 빼앗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가 이를 얻어내기 위해 프로이센과 벌인 전쟁
– 인도의 무굴 제국이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영국의 벵골 지방의 침공을 저지하려고 함
– 오스트리아-프랑스-작센-스웨덴-러시아 VS 프로이센-하노버-영국
– 유럽에서의 전쟁은 포메라니아 전쟁으로도 불림
–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전쟁은 프렌치 인디언 전쟁으로 부림
– 결과 : 유럽에서 영국과 프로이센이 이겨 슐레지엔의 영유권을 확보. 식민지 전쟁에서는 영국이 이겨 북아메리카의 뉴프랑스(현재의 퀘벡주와 온타리오주)를 얻어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 세력을제거하고 인도에서도 프랑스 세력을 제거해 대영제국의 시발점이 됨.

이 시점부터 동인도회사는 무역회사에서 인도 벵골의 토지 소유자가 되어 인도를 식민통치하는 일종의 정부기관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동인도회사의 군대를 지휘한 로버트 클라이브는 벵골에서 얻는 수익을 매년 170만 파운드로 추정했습니다

(BBC 방송 다큐의 번역자가 수익을 1억7천만 파운드로 계산하는 실수를…)

동인도회사는 벵골을 운영하고 남은 돈을 모두 이익으로 챙겼는데 마진율이 49%였다고 합니다

그 후 10년동안은 동인도회사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1760년 후반부터 3년동안 벵골 지역에 초유이 기근이 찾아옵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식량란이 계속됐지만 영국인들은 벵골에서 번 돈으로 영국에 저택을 사고 인도에서는 매일 파티를 열었습니다

영국인들이 인도에서 파티를 가는 길에는 굶어가는 벵골주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동인도회사의 기록에는 6주동안 7천600명이 사망했고 다른 지역은 사망자가 두배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너무 굶주려 서로 잡아먹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동인도회사는 벵골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곡물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고 식량 저장을 금지했습니다

식량이 되는 곡물을 뽑아버리고 수익성이 높은 농산물을 재배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아편같은 작물을 심게 했습니다

또한 동인도회사의 직원들은 식량을 벵골에 제공하지 않고 더 비싼 가격에 다른 지역에 판매하는 악행을 저지릅니다

이당시 동인도회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가뭄이 계속되면 세금이 감소할것이다’라고 적혀있습니다

행정이 아닌 자사의 이익을 중시한 것입니다

이 당시 기근으로 인한 인도의 사망자는 200만명에서 1천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벵골 지역의 대기근
벵골 지역의 대기근

동인도회사가 지배하던 벵골지역의 3년 대기근은 벵골의 경제를 무너뜨리고 회사의 수익도 급격히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런던 주식시장의 주가가 급락하고 배당금 지급도 중단됐습니다

동인도회사때문에 주식시장의 버블이 터지자 영국 의회는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벵골지도자와의 전투에서 동인도회사의 군대를 지휘해 승리해 영국 최고 부자이면서 하원의원이었던 로버트 클라이브가 의회에서 소환당했지만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동인도회사의 부패와 무능, 탐욕으로 평판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1772년 스코틀랜드의 주요은행인 에어뱅크가 파산해 주식시장에 금융위기가 닥쳤습니다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30개의 은행이 파산했습니다

이때문에 시장에 돈이 돌지 않아 동인도회사는 영국 은행에서 계속 돈을 빌리고 부채가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현금이 바닥난 동인도회사는 영국정부에 구제금융(bailout)을 신청하게 됩니다

1772년 대마불사의 논리로 동인도회사는 영국은행에서 50만 파운드(현재 금액으로 약 2억7천600만 파운드, 한화로 약 5천억원 정도)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게 됩니다

이후 동인도회사의 힘은 약해져갔습니다

1784년 인도법에 따라 동인도회사의 경영권은 정부가 임명하고, 의회에 보고하는 독립 이사회로 넘어가고 뇌물이 금지됩니다

※ 이 당시에 동인도회사의 인도 내 부패는 엄청났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부업이 허락되고 여기저기 불법적인 뇌물과 상납으로 엄청난 부자가 됐습니다.

인도법에 영국 정부는 인도를 통치할 총독을 직접 보내게 되면서 영국 제국이 시작됩니다

다만, 인도를 통치할 총독은 여전히 동인도회사의 직원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영국은 노골적으로 인도인을 2등 시민으로 대우합니다

1798년 벵골 총독인 리처드 웰즐리 경 때문에 영국 동인도회사는 무역(trade)과 제국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동인도회사는 인도에서의 군사비용을 최소화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도 총독인 리처드 웰즐리는 인도에서 프랑스의 잔재를 없애고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웰슬리는 동인도회사의 이사였지만 회사의 이익보다는 영국을 제국으로 만들기 위해 인도를 정복하고 지배지역을 넓혀갑니다

동인도회사는 마이소르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동맹이자 동인도회사의 강적인 티푸 술탄을 공격해 죽이고 마이소르주까지 통치 지역을 넓히게 됩니다

리처드 웰슬리가 총독으로 지낸 4~5년동안 동인도회사의 영토가 증가했으며 이들이 지배하는 인도국민은 4천만명이 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군비도 대폭 증가했습니다만 동인도회사 이사회는 영국에 근거해 이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리처드 웰즐리 총독은 당시 야만국가인 인도를 영국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인도 사람들을 2등 시민으로 보고 이들을 계몽하려고 했습니다

이즈음 영국에서 선교사들이 입국했고 인도의 힌도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813년 영국정부는 선교사의 출입을 자유롭게 하도록 동인도회사에 강요해 이를 관철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20년마다 인도 무역 독점 면허를 갱신해야 했습니다

이 독점 면허를 폐지하자는 다른 상인들의 주장들이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1813년 개정 계약에서 동인도회사는 인도 무역독점 면허를 잃어고 회사의 직원은 상인에서 지배자로 변화했습니다

동인도회사 직원은 인도 말을 쓰고 옷을 입는게 금지됐습니다
영국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인도 사람들은 열등민족으로 간주됐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인도는 계몽의 대상, 미개한 지역으로 더욱 간주되고 인종차별정책이 심화됐습니다

동인도회사는 1830년 재계약에서 중국 무역독점권도 박탈당하고 모든 상업 관련 업무가 정지돼 공식적으로 무역회사에서 지배기관으로 변신합니다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아편 재배지를 지배했기 때문에 독점적으로 아편을 구매해 캘커타로 이동한 후 중국으로 수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동인도회사는 수십배의 이익을 챙겼다고 합니다

1938년 한해에 아편 3만8천박스가 중국으로 팔렸습니다
1천200만명의 중국인이 아편으로 사망하고 중국의 국부가 빠져나갔습니다

1839년 중국은 광동지역에서 아편 2만 상자를 바다로 던지고 아편을 수입금지시킵니다

동인도회사와 영국은 아편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편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상품이었고 아편이 없이는 청나라에서 수입하는 차 무역에 필요한 자금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중국에 전쟁을 선포하며 그 유명한 아편 전쟁이 일어납니다

영국은 아편전쟁에서 승리해 홍콩을 할양받습니다

이후 홍콩은 아편 무역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역사상 가장 불명예스럽고 더러운 전쟁 중 하나였습니다

동인도회사는 다시 승리했습니다만 인도에서 세포이때문에 위기에 쌓이게 됩니다

1830년에 동인도회사가 고용한 세포이는 약 20만명이었는데 유럽 출신 군인은 4만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인도인을 열등한 민족으로 보는 영국 출신 상급자들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능력있는 영국인은 군을 떠나 연봉이 훨씬 높은 동인도회사로 이직하게 되고 결국은 쭉정이들만 군에 남았습니다

무능력하고 불만투성이인 이들 영국 출신 상급자들이 인도 세포이 사병들을 경멸하고막 대해서 세포이의 불만은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불을 붙인것이 세포이 사병들이 사용하는 총에서 나옵니다

세포이 사병들은 탄약통에 돼지와 소 기름을 사용한다는 소문들을 듣고 분노합니다

탄약통의 끝을 물어뜯어 탄약과 총알을 총에 넣게 되는데 탄약통에 돼지와 소 기름이 있다면 소를 숭배하는 힌두교인과 돼지를 더럽다고 하는 이슬람교도를 모욕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동인도회사의 용병이었던 세포이가 나중에 세포이 항쟁이라 불리는 반란을 일으킵니다

1857년 인도 북부의 세포이 반란군들은 델리 등 여러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들은 칸푸르 지역을 점령하고 수백명의 영국군인과 180여명의 영국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모두 죽입니다

영국은 칸푸르 지역에 3천명의 군대를 파견해 반란을 일으킨 칸푸르 지역의 모든 남자, 여자, 아이를 죽입니다

이로 인해 인도는 들끓게 됩니다

결국 1858년 영국 정부는 동인도회사가 인도를 지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설립 258년만에 동인도회사를 공식적으로 해산하고 인도의 영토와 국민은 영국정부가 직접 지배하게 됐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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